“몸으로 사고하는 예술, AI 시대 더 깊어질 것”
등록일 26-10-1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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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실천
“몸으로 사고하는 예술, AI 시대 더 깊어질 것”
2026.10.12
무용학부 홍경화 졸업생이 대한민국예술원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경희에서 학부와 석사·박사를 모두 마친 그는 깊이 있는 학문적 탐구와 창의적 실천력을 겸비한 무용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용학부 홍경화(01) 졸업생, 대한민국예술원 ‘젊은 예술가상’ 수상
몸·기술·인간을 잇는 안무의 여정, 몸의 감각으로 확장하는 무용의 가능성
“상을 받았다는 기쁨도 컸지만, 앞으로 더 나은 작업을 하라는 요청으로 느껴졌다” 무용학부 홍경화 졸업생은 최근 대한민국예술원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수상 소식을 처음 알게 된 곳은 미국이었다. 미시간대에 초빙돼 갔다가 남겨 놓은 짐을 정리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소식에 기뻤던 것도 잠시 시상식이 다가올수록 수상의 의미가 깊어졌다. 엄숙한 시상식 현장에서 그는 자신의 무용 인생을 되돌아봤다. 가족에게도 오랜만에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성취감을 느꼈고, 함께해 준 부모님과 가르침을 받은 스승님들께 감사한 마음” 이라고 전했다.

경희에서 보낸 시간은 홍경화의 작업 세계에 깊게 남았다. 학생 개개인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경희에서 체득한 주체성
홍경화의 작업 세계는 경희에서 보낸 시간과 맞닿아 있다. 학부와 대학원을 모두 경희대에서 수학한 그는 “학부부터 기술을 익히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안무 언어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라며 “현대무용가에게 이미 존재하는 움직임을 잘 재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질문과 감각으로 새로운 움직임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의미였다”라고 밝혔다.경희의 교육 환경은 학생 개개인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존중했다. 무용과와 조각과 학생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었던 협업 수업도 기억에 남았다. 조각을 전공한 학생들이 무용을 경험하고 무용을 전공한 학생들은 조각의 기법과 감각을 안무에 적용했다. 홍경화는 “다른 전공의 친구들과 만나며 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일상의 시간도 그의 몸에 쌓였다. 동기들과 미술관과 전시장을 자주 찾았고, 잎이 떨어지는 모습에서도 움직임의 원리를 이야기했다. 그는 “경희대는 운명처럼 만나게 된 학교다. 당시의 시간이 예술적 토대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회화에서 몸의 기억으로 나아간 작품 세계
초기 작품의 출발점은 주로 회화였다. 2006년 작품인 ‘키스(Kiss)’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에서 영감받았다. 남성성과 여성성, 그사이의 관계와 감정을 움직임으로 풀었다. 이듬해에는 피에트 몬드리안의 회화를 바탕으로 작업했다. 서로 다른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얻은 시각적 자극은 무용이라는 신체의 언어로 전환됐다.시간이 흐르며 그의 관심은 내면과 ‘몸’ 그 자체로 확장됐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2017년 작품 ‘몸에 저장된 시간’이 있다.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방식과 몸에 새기는 감각은 다르다. 각자의 경험이 서로 다른 몸을 통해 다양하게 발현되는 지점에서 춤의 매력을 발견했다. 그는 “사람마다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각자의 몸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한다”라고 말했다.

회화에서 영감을 받던 홍경화의 작품 세계는 몸 자체로 확장됐다. ‘몸에 저장된 시간’은 동일한 경험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몸에 집중한 작품이었다.
낯선 공간에서 마주한 순간의 영감
이 작품은 폴란드 공연 중 우연히 마주한 거리의 풍경에서 시작됐다.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는 서로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이들의 움직임에서 시간의 연속성과 인간의 역사를 떠올렸다. 이 순간은 그에게 하나의 회화처럼 남았다. 이후에 접이식 구조로 자유롭게 변형되는 가구 오브제를 발견했고, 이를 작품의 핵심 소재로 활용하기로 했다. 해외에서 직접 들여온 이 오브제는 공연이 끝난 뒤 버려지는 무대 세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반복해 사용할 수 있고, 공연에 따라 형태도 바꿀 수 있는 물성은 작품이 다루는 시간과 변형의 감각을 시각화하는 장치가 됐다.홍경화는 당시의 자신을 “무모할 만큼 도전적이었다”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 도전은 확신에서 비롯됐다. 낯선 소재와 공간, 무용수의 움직임을 결합해 구현한 장면은 관객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몸에 저장된 시간’은 지금도 다양한 버전으로 확장하고 있고, 그가 가장 애정을 갖는 작품으로 남았다.
순간의 예술인 춤, 기술로 시간을 붙들어 확장
최근의 작업은 인간의 몸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9년부터 미디어아트 전문가와 협업해 무용수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이를 시차와 왜곡을 두고 무대에 구현하는 실험을 이어왔다. 춤은 현장에서 탄생하고 사라지는 찰나의 예술이다. 같은 안무라도 매 순간의 몸과 공간,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그는 이러한 사라짐의 특성을 기술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과거·현재·미래의 움직임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경험으로 확장하려 했다.그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효과가 아니다. 그는 “의미 없는 영상이나 보여주기 식 장치가 아니라 기술과 몸이 실제로 어떻게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기술이 인간의 몸을 보조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몸의 한계와 가능성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설명이다. 기술은 예술에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대상이 아니라, 몸과 함께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동반자다.
미국에서의 교육과 창작 경험은 이런 생각을 더욱 넓히는 계기였다. 미국 대학의 무용 교육은 전공의 경계를 비교적 유연하게 넘나들고,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무용을 전공하지만 컴퓨터과학이나 생물학을 공부하고, 다른 직업과 춤을 병행하는 이들도 많았다. 반면에 한국의 무용 교육은 오랜 훈련을 바탕으로 높은 전문성과 집중도를 갖는다는 장점이 있다. 두 환경을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 그는 “학생들이 다양한 춤과 학문을 접하면서도, 자신이 왜 춤을 추는지 더 주체적으로 질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도 전했다.
AI 시대, 몸으로 사고하는 예술
그의 최근작인 ‘미씽(Missing)’은 기후변화 이후의 몸을 상상한다. 미국 미시간에서 작업했던 ‘숨 쉬는 땅(The Breathing Land)’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자연을 잃어버린 시대에 인간의 몸이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고 변형될지를 질문한다. 사냥하던 시대의 몸과 자동차를 타고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오늘의 몸이 다르듯이 미래의 몸 역시 환경에 따라 변화할 것이라는 상상이다. ‘미씽’은 오는 10월 28일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ICF)에서 국내 초청작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홍경화는 앞으로도 국제 교류와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 말라야대학교 교환교수 프로그램을 통해 현지 학생들과 만나고, 대학 간 무용 교육과 창작 교류의 가능성도 모색할 계획이다. 그에게 수상은 작업의 마침표가 아니라 다음 질문을 향한 출발점이다. 그는 경희 구성원에게 ‘기다림’과 ‘관심’을 당부했다. 예술은 취업률이나 단순한 수치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분야기 때문이다. 당장의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예술은 더 긴 시간 속에서 사회에 깊은 파장과 기여를 남긴다. 특히 AI 시대에는 실제 몸이 지닌 감각과 경험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몸을 움직이며 생각하는 일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경험이다. 무용은 단순히 몸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몸을 탐구하는 인문학이 될 수 있다”라는 그의 생각은 무용의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는 무용이 다른 학문과 연결되고, 학생들이 몸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이 넓어지길 바란다. 서로 다른 전공과 구성원이 하나의 몸처럼 연결될 때, 대학 역시 더 풍부한 창의성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 정민재(ddubi17@khu.ac.kr)
- 양혜빈 (pr@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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