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우리’에게 보내는 작은 격려 [출처 : 대학저널]
등록일 25-04-1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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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안영호(1981년 입학), 주수만(1977년 입학), 홍구표(1976년 입학), 정영기(1988년 입학), 조영환(1972년 입학), 김동근(1981년 입학) 씨와 민경탁(2022년 입학) 제약반 반장 학생. 사진=경희대 약대 제약반 동문회 제공
[대학저널 온종림 기자] 책벌레 노릇은 ‘이제 안녕’이라고 생각했다. 낭만 가득한 대학생활을 꿈꿨다.
하지만 그 꿈은 입학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약학도의 생활은 말 그대로 빡셌다. 해야 할 공부는 많았고 엄격한 조교가 내는 그날그날의 학습 내용 테스트를 통과해야 귀가할 수 있었다. 이맘때면 캠퍼스에 만개하던 홍철쭉이며 벚꽃. 하늘이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던 화려한 봄날은 그저 남들 얘기일 뿐이었다. 1970년대 후반 경희대학교 약학대학 풍경이다.
버거운 학습의 압박 속에서 그나마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동아리 활동이었다. 시간 여유가 없는 탓에 전공과 무관한 동아리 활동은 어려웠다. 약대엔 제약반, 분석반, 생약반 등 3개의 동아리가 있었다. 이 중 제약반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술도 열심히 마시는, 비교적 낭만이 살아있는 동아리였다. 약대 한 학년 정원이 40명이던 시절, 학년마다 두세 명이 제약반에서 활동했다.
동아리방도 없었다. 강의가 빈 제약실이 보금자리였다. 여러 실험기구들 사이에서 공부하고 또 틈틈이 젊음과 미래를 이야기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학교 앞 주점이 문을 닫으면 제약실에서 실험용 알콜에 물의 희석해 마시는 ‘실습 아닌 실습’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낸 70년대 말 제약반의 추억은 평생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국을 열거나 혹은 취업해 바쁜 날들을 보냈다. 그런 날들 속에서도 제약반은 잊지 못 할 추억이었다. 언제든 달려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었다.
바쁜 속에서도 만남을 이어가던 제약반 선후배들은 어느 날 문득 생각을 모았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제약반 재학생 후배들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7080 세대와 환경은 달라졌지만 스무 살 언저리 자신들과 비슷한 삶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을 후배들을 부축하고 싶었다.
정해진 액수 없이 형편 닿는 대로 돈을 모았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엔 1억 원에 가까운 액수를 적립할 수 있었다. 이자로 2~3명 후배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줄 수 있는 액수였다. 장학금이라지만 거창한 호칭도 없었다. 그저 ‘제약반 장학금’이란 소박한 이름으로 20여 년간 빠짐없이 후배들 어깨를 가볍게 해 줄 수 있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경희대 약대 4학년 민경탁 학생에게 ‘제약반 장학금’을 전달하는 행사가 열렸다. 제약반 동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영기(1981년 입학) 국립보건연구원 미래의료연수부장이 선배들의 마음을 담은 장학금을 전달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이 장학금을 위해 애를 쓴 네 명의 제약반 선배들에게 진심을 담은 감사패가 전해졌다. 조영환(1972년 입학), 주해식(1973년 입학), 홍구표(1976년 입학), 주수만(1977년 입학) 씨가 그들이다. 각각 60대 후반과 70대라는 세월의 나이테를 가졌지만, 경희대 약대 ‘제약반’에서 이들은 여전히 20대 초반의 싱그러운 젊음이었다.
이날 자신의 모습이 담긴 인형으로 장식한 감사패를 받은 홍구표 씨는 “어린 후배들을 보면 되레 용기를 얻게 된다”고 했다. 40년 전 자신들처럼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을, 또 다른 자신들에 대한 작은 격려라고도 했다. 그는 “경희대 약대 ‘제약반’만의 격 없는 사랑과 나눔이 아주 오래 이어지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출처 : 대학저널(https://www.dhnews.co.kr)